"There's no way to run. Just strive, kids."
아무렇게나 정돈 안 된 머리칼은 얼핏 보면 아무 데서나 구르다 와 먼지가 앉은 것 같기도 했다. 어디서든 눈에 안 띄려야 안 띌 수가 없었다. 아무렇게나 올려묶은 머리는 하나로 규정되고자 하질 않는 그 성격 빼다 박은 것처럼 어지럽다. 자욱한 담배 연기가 검은 정글에 뒤섞인 것만 같은 꼴이었다. 꺾인 아치형으로 굽어진 눈썹 끝은 곧잘 짙게 그린 아이라인의 끝과 마주치는 일이 허다했다. 칼리에서는 아무도 그 아이라인을 따라 할 여인들이 없었다. 범죄의 온상을 따라 했다간 난리 나는 보수적인 이 정글 속에서 누가 쉬이 개척자의 뒤를 따르기가 쉽겠냐는 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매일 같이 눈꼬리 위로 치켜 올라가는 아이라인만큼이나 아넬라의 기세는 드높아져 갔다. 갈빛의 두 눈을 빛내며 사랑해 마지않는 정글 속의, 칼리 마약 유통의 여왕 자리에 턱 하니 올라앉았으니 수많은 입방아가 오르내리지만, 루머는 루머일 뿐, 확인하고자 했던 놈들은 칼리의 어떤 곳에 짐승 밥으로 내던져졌을지 아무도 모를 일이라는 것처럼 보기 좋게 말려 올라간 선명한 입꼬리에는 담배 하나 물려있곤 했다.
자신이 이 정글에서 모두가 탐내는 먹잇감임을 아넬라는 기가 막히게도 알았고 - 사실 모르려야 모를 수가 있나? - , 보란 듯이 저를 드러내는 것에 있어 거리낌이 없었다. 저 잡겠다고 칼리의 정글을 마구 헤집어 놓는 꼴을 보고 있자면 아넬라는 마음이 썩 좋지 않았다. 그건 내 집이고 우리 아기들의 쉼터인데 말이지. 무단침입자에게는 적당한 벌이 필요하잖아? 망설임 없이 총 갈기는 손가락 끝에는 검은 네일 폴리쉬가 빛났더랬다. 손끝부터 뱀처럼 타고 올라가 보자면 팔뚝을 휘감은 문신들도 그렇고 피부 위로는 색색의 타투가 어지러이 수놓아져 있었다. 딱히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타투 없는 아넬라는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항간에는 그렇게 몸에 수놓아지는 것을 사랑한다고 말했다는 아넬라의 이야기가 오르내리기도 했다.
입는 옷들은 하나같이 눈에 띄는 화려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정돈된 이미지, 그따위 것들은 아넬라에게는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정신없게 만들어서 저를 찾아내기 힘들게 만드는 카멜레온의 보호색 같은 것이라고 아넬라는 이야기하곤 했다. 사실 그렇지도 않은데 말이다. 보호색보다는 보색에 가까운 것이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글 속에서 저를 발견해내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선전포고 같은 것이었다. 나는 여기 있을 테니 잡아보라는 그런 원색적인 도발. 수많은 시체를 밟고 올라서며 정글 바닥 안 밟은 곳 없이 아넬라의 몸을 지탱할 두 다리, 그 발끝에는 청키한 굽이 매달린 워커가 자리했다. 이제는 정글의 등쌀에 휘말려 낡기도 하고 여기저기 긁힌 자국에 진창을 뛰어다녀 생긴 흙탕물이 얽혔지만 아넬라는 그것 제법 아꼈고 말이지.
호전적이고, 낙천적이고, 싫증이 잦으며, 이기적인 집시
" 그래서 어쩌라고. 우리 애기들이 싫다잖아. "
자기보다 나이 두어 배는 있을 법한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도 틈나면 입버릇은 우리 애기들 하는 것. 마음에 안 들면 허리춤 벨트 사이에 끼워둔 총 자루 집어들어 쏴버리는 것도 금방이다. 칼리 정글 그 어느 곳이던, 총성이 나뭇잎을 흔들고 수많은 독수리가 날아오르는 중심에는 아넬라가 있었다. 딱히 피를 보면 흥분하는 것도 아니었건만 그냥 마음에 안 드는 놈은 꼭 조져놔야 직성이 풀리겠거든. 듣기 싫은 말 하는 놈 머리통에도 바람구멍, 다른 곳으로 약 빼돌리는 놈 심장에도 바람구멍. 온갖 것에 구멍을 내어야 직성이 풀리겠느냐는 다른 독수리의 말에는 깔깔깔, 천박하리만치 웃어대었다.
" 어쨌거나 오늘이 좋잖아. "
어제 뒤져버린 쟤네 애들은 모르겠지만. 지나치게 낙천적이라고 할 수도 있었겠다. 아넬라가 바라는 것은 돈도 땅도 약도 아니었다. 그냥 이렇게 깔깔댈 수 있는 것 정도면 충분한데 그러기 위해서 필요하지 않은 장애물을 제거할 뿐이었던 것들이지. 오늘이 좋으면 그만, 그보다 더 오래 즐겁고 원하는 대로 방탕하게 뒹굴 수나 있으면 더 좋은 거지. 우리 독수리 애기들 입에 맛난 거 물려주면 더 좋고, 약까지 하면 금상첨화일 텐데. 호화로운 건물 밖의 총성이 이질적이거나 말거나, 아넬라는 콧노래나 흥얼거리며 발끝 까딱대는 게 일상이다.
" 이거 맛없어져서 안 찾는 거 몰라? 언제부터였냐고? 어제부터! "
싫은 건 어찌나 또 많은지. 여왕이라 변덕이 심하다는 말은 지독히도 싫어했다. 사내새끼들이, 그러니까 왕이어도 가리는 게 많거든. 짜증스러운 얼굴로 손톱 위 네일 폴리쉬를 매끈하게 칠하고 말리는 일은 하루 이틀이 아니다. 검은빛 네일 폴리쉬도 잘하고 있다가도 마음에 안 들어 지워버리는 일이 허다했고. 자기 비위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한 싫증이 강했는데, 아넬라 본인은 그런 성격이 총만 잡으면 없어진다고 했다. 아마 없애버리는 것으로 본인의 싫증을 해결해 버리기 때문인 듯.
" 이건 전부 우리 엘 아귈라 거야. 알아들어? "
협상이 도통 통하질 않았다. 이기적인데다가 자기 실속 챙기는 것에는 빤했다. 자기 실속이래 봤자 실은 독수리들 먹이였다. 이기적인 사람들은 잘 구스르고 어르기만 하면 조금 유해진다고 하는 항간의 말은 아넬라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안 들어먹히거든. 들어먹혔더라면 아마 애초에 칼리에선 독수리의 깃털 하나 볼 수 없었을 것임을 아넬라도 잘 알고 있었다. 정글 속에 뒤엉킨 먹이사슬 맨 꼭대기에서 내려보려면 닥치는 대로 잡아먹고 닥치는 대로 일용할 양식을 모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지극히 상식적이면서도 묵과하고 마는 사실을.
1. LIFE
- 1962년, 칼리 보고타에서 부유한 편모 아래 출생. 아버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아넬라가 스스로 숨기고 있는 것인지도.
- 마리화나 연기로 희뿌연 십 대를 아주 방탕하게 보냈다. 항간에서는 이때 아넬라가 아이를 가진 적이 있다고도 하는데, 예상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자면 열여섯 무렵이었을 테다. 믿거나 말거나.
- 엘 아귈라에는 아넬라의 부유한 어머니가 가지고 있던 연줄이 많았어서 어렸을 때부터 알음알음 소식을 주워들었다는 주변의 소문.
- 엘 아귈라에서의 첫 시작 당시엔 아넬라 역시 델 마노였다. 그 당시 아넬라의 나이 18세.
- 비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날 새벽에 일찍 독수리 둥지로 찾아든 엘 아귈라의 조직원이 본 풍경으로 인해 코라손이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물론 아넬라에게서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이지만. 수군수군 퍼져나오는 이야기를 들으면 3대 코라손의 시체 위에 떡하니 다리를 꼬고 앉아 담배나 피우고 있던 것이 아넬라라고. 그리고 밝아오는 태양 아래 아넬라가 코라손의 자리에 우뚝 섰노라고 말이다.
2. ABOUT
- 누구에게서 배웠는지는 단 한 번도 발설한 적이 없어 모르지만, 꽤 수준급의 사격실력을 가졌다.
- 몸이 가볍고 날래 근거리 몸싸움에서도 나쁘지 않게 싸우는 편이지만 본인이 싫어한다. 경박하다며 깔깔 웃고 마는 일이 허다하다.
- 방탕하다면 뭐든지 즐겁다. 술, 담배, 약, 섹스 전부.
- 아부하는 말에 손을 내저어도 은근히 좋아한다.
- 소유하고 있는 차가 수십 대라는 소문이.
- 식사보다는 칼리 시장바닥에 널린 맛 좋은 과일이면 충분한 식사가 된다. 식사 자체에 그다지 미련을 두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