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ule."
여기선 내가 너희들의 규칙이야.
화려한 실적과 무용담을 기대하고 보고타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가 지쳐 떠나가는 요원이 한 해 몇인가. 그래도 사실 상관없었다. 폭력이든 명성이든 굶주린 이들이 여길 찾는 건 늘 같았으니까. 오고 가는 얼굴들 사이에서도 오래토록 바뀌지 않는 콜롬비아 지국의 악명 높은 기둥이 하나 있었다. 아니, 있다. 그녀의 이름은 카르멘 발레타, D.E.A 콜롬비아 지국의 국장이다.
Et c'est l'autre que je préfère
난 과묵한 사람이 좋아요
Il n'a rien dit mais il me plaît
그는 말이 없이도 내 마음을 움직이죠
공항의 입국장에서 이 작전에 참여하기 위해 먼 바다 건너온다는 요원들을 기다린다. 그 가사대로라니까. 난 말은 없고 행동은 풍부한 사람이 좋더라. 발레타 국장은 종종 입버릇처럼 읊곤 했다. 이번엔 어떤 요원들이 정글과 마약의 종주국에 올까? 밀린 서류도, 보고타 미 대사관의 잔소리도 그녀가 공항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막지는 못했다. 이 먼 데까지 와서 나랑 지옥에 뛰어들겠다는 사람들 얼굴은 내가 꼭 맞이해 줘야겠다니까.
엉성하기 짝이 없는 손팻말을 흔들어 보인다. 웰컴!
보고타에서 종종 열리는 외교 행사에 참석할 때면 꼭 미 대사관에서 한자리 맡은 대사들은 그녀에게 시덥잖은 농담을 했다가 몇 대씩 얻어맞곤 했다. 이야, 이렇게 보면 요원 하기엔 아까운 얼굴 아니야? 그도 그럴 것이 평소엔 아무렇게나 묶어 올린 머리를 매끄럽게 틀어올리고 여느 여인처럼 장신구로 치장한 모습은 눈부시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겠지.
카르멘 발레타. 다른 무엇보다도 그녀를 처음 마주쳤을 때 잊을 수 없는 것은 그 눈빛이다. 오만하고 당당하나 언제나 열의로 가득한. 포기를 모르는 지독함이 자랑처럼 깃들어 있었다. 연한 푸른빛 눈은 칼리의 쨍한 볕에 비치면 가끔 녹빛에 가깝게 보일 정도로 오묘했으나, 대부분 선글라스를 내려 쓰고 다닌다. 길고 구불거리는 진갈색 머리칼은 오피스든 현장이든 대충 모아 하나로 묶는다. 호리호리한 체구는 오래토록 국장직에 머물렀던 탓에 넓은 국장 데스크를 사이에 두고 보면 꽤 가녀려 보였으나, 헛소리하다 발레타 국장에게 한 대씩 맞은 요원들의 증언을 듣는다면 딱히 가녀리단 말을 들을 처지도 아니었다. 흰 셔츠와 바지로 감싼 몸 곳곳엔 여기서 악착같이 버티며 얻은 크고 작은 상처들이 가득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최근에 생긴 거라면, 뭐긴 뭐겠어.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끝까지 곁에 데리고 다니던 경호원 두 명 중 하나를 사살하며 생긴 기다란 찰과상. 지금도 왼쪽 옆구리가 쓰리다는 소리를 자주 한다.
선글라스, 셔츠, 바지, 자켓, 그리고 허리의 권총 홀스터. 그게 다다. 행색은 늘 같았다. 얼마나 늘 같았냐면, 국장님, 집에 같은 셔츠랑 바지만 열 벌씩 있죠? 하는 소리는 지겹게 들을 정도로. 향수도 화장도 특별히 얼굴 비춰야 하는 자리가 아니라면 - 그리고 카르멘의 기준에서 이 '얼굴 비춰야 하는 자리'라는 것은 콜롬비아 대통령과의 만찬 자리 즈음 되어야 부합하는 것이었다 - 생략하고. 습관처럼 바르는 그 레드립 하나만 남았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실용주의
그녀는 쓸데없는 것을 참아줄 만큼 너그럽지 못했다. 쓸데없는 사람, 쓸데없는 규칙, 쓸데없는 예의. 목적과 성과가 분명한 것만 남기고 삶의 주변부를 모두 쳐냈다. DEA 콜롬비아 지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적당히 이름만 걸고 지부에 발 붙이던 요원들을 모두 정리해 워싱턴행 비행기에 태워보낸 것이 발레타가 국장으로 부임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이니까.
반대로 존재 이유가 분명한 것은 존중하고 철저하게 지켰다. 내 사람, 내 규칙, 내 구역에서의 예의. 필요한 이야기는 신참 중의 신참 요원이라도 귀담아 들었고 필요한 조치는 요원들이 현장에서 일하기에 무리 없도록 가장 빠르게 시행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래서 발레타가 보고타에 온 이후로, DEA 콜롬비아 지국의 성과는 언제나 본부에서 기대한 것 그 이상이었다.
강인한 협상가
요원으로 일한 기간도 상당히 길었지만, 국장직을 맡게 되면서 발레타의 진가가 드러난 면이 있다면 바로 수완가로서의 일면일 것이다. 필요한 것은 어떻게든 얻고 반대하는 의견은 어떻게든 관철시킨다. 그녀는 포기하는 법이 없었고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경청한 후 설득할 줄 알았고 때로는 말을 앞지르는 행동으로 결과를 보여준 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이끌어버리곤 했다. 그렇게 DEA 콜롬비아 지국은 필요한 때에 필요한 지원을 시기적절하게 받으며 예상보다 수월하게 현지에서 작전을 수행할 때가 많았다.
이번의 레드럼 작전 역시 시행을 강력하게 밀어붙인 후 DEA의 지국이 존재하지 않는 칼리 근방에 DEA가 사용할 수 있는 작전기지와 최소한의 지원 인력을 빠르게 갖출 수 있었던 데에는 그의 그러한 성격 탓이 컸다.
염세주의
최악의 최악을 상정하고 맥락과 사람을 이해한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도 적다. 고작 돈 몇 푼, 마약 몇 봉지 때문에 사람의 생사가 오가는 정보를 팔아넘기는 주민들과 사방이 적의 눈인 작전지역에서 오랫동안 버티며 그럴 수 밖에 없게 됐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몰아 넣는 배팅은 하지 않는다. 그만큼 그의 개인적인 삶이라곤 남편과 아들이 죽은 뒤로 완전히 메말라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1951.01.21 미국 시애틀에서 상원의원 아버지와 교수 어머니의 둘째로 출생.
1970.09 스탠포드대학 입학
1974.08 스탠포드대학 사회학과 졸업
1974.10 생긴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부서였던 DEA의 스카우트 제의.
1975.01 콴티코의 DEA 본부에서 DEA 요원 훈련 이수 완료. DEA 뉴욕 지부로 발령.
1979.09 DEA FAST 팀에 자원해 멕시코 ~ 남미 일대의 현장 급습 및 제압 작전 수행.
1983.09.27 DEA FAST 소속 군의관 매튜 레이히와 결혼. 카르멘 레이히가 되다.
1984.03.14 아들 로데릭 레이히 출생.
1985.03 DEA 콜롬비아 지국으로 발령. 남편은 보고타 지역의 무료 의상봉사 명목으로 함께 입국.
1987.10.30 작전 '헤비 레인'으로 칼리 카르텔을 쫓던 중, 카르텔 조직원의 보복으로 남편과 아들이 자고 있던 자택이 습격당해 화재와 함께 남편, 아들이 목숨을 잃다. 장례식을 치른 후 카르멘 발레타로 돌아오다.
1989.01.01 DEA 콜롬비아 지국의 지국장으로 발령.
- 말술.
- 남편과 아들을 잃은 후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지금은 헤비스모커.
- 특기는 근접체술을 통한 1:1 제압. 급소만 효율적으로 노리는 전투 스타일.
- 주로 DEA 표준지급 권총을 활용한 권총사격 실력도 수준급.
- 스페인어에 원어민 수준으로 능통하다.
- 본부에 연줄이 상당하다는 후문. DEA에서 오래 일했던 만큼 알고 있는 선후배, 동기들이 높은 자리에 많다.
- 국장으로 승진하고 나서도 큰 규모의 작전에는 반드시 현장에 나선다. 현장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상급자가 괴리가 생기면 안 된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 드물게 사건이 없는 날이라도 생기면 지국의 요원들과 대련을 즐긴다.